5살 아이, 이성친구에게 관심 보이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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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Zili 작성일25-08-01 08:35 조회5회 댓글0건본문
고 이성친구 2때 친구들. 2020.12.13. 포천 봉철네 송년회엔 ㅊ은 有故, 나는 숙취 불참.지금 다시 생각해도 잘나가던 20대를 보낸 후 30대 초반 한동안 힘들었지만 결혼을 못한다는 건 전혀 예상 못했다. 아무튼 20대 후반부터 주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소개시켜주고 연애를 밀어줬지만 의외로 잘 안풀렸고 결국 52세에 결혼을 포기하고 말았다. 오후에 읍내 나물축제의 후배네 매장에 갔다가 시간이 늦어서 헛탕치고 돌아오면서 문득 실수투성이였지만 지나간 이성친구 좋은 시절이 떠올랐다. 여기서 망가졌다. 1988년 11월ㅇ 20대 후반 잘나가던 시절입사 동기인 ㅅ은 과하게 활달했고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지만 여전히 놀기 좋아했다. 당시 우리는 주식시장에서 제법 큰 돈을 벌며 잘나갔는데 스물아홉 살 어느날 ㅅ이 내게 찾아와서 말을 건다. ㅅ : 이쁜 여자가 하나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당시 나는 여자 얼굴을 따진다고 소문이 났다. 청청수 : 그래. 한 번 보지 이성친구 뭐.ㅅ : 근데 아가씨가 직업이 좀 문제가 있어. 딱 고거 하나만 걸려.잘나가던 시절. 1988년 3월 긴자.청청수 : 직업이 뭔데? 내가 돈 잘벌면 되잖아? 여성의 직업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ㅅ : 직업이 . . . 이발소 면도사야.청청수 : 캐시캬. 그냥 네가 만나.당시는 여의도 같은 번화가에도 식품위생업법을 위반하는 향락 이발소가 발에 채일 때였다. 그러던 ㅅ은 1990년대 초반 경제사범으로 위기에 몰려서 이성친구 미국으로 도망가고 말았지만 그는 거기 가서도 잘 살 사람이다. 이젠 공소시효도 끝났을 텐데 . . . 가끔은 ㅅ의 소식이 궁금하다. 잘나가던 끝자락. 1990년 2월 대리 초임.ㅇ 정상 사회로 복귀한 후고교 시절에 어울리던 ㅊ은 친구들 중에 드물게 명문대 출신인데 30을 넘기고 다시 만나서 예전 친구들과 같이 어울렸다. ㅊ역시 우라지게 놀기 좋아하는데 술만 안취하면 처신이나 말씨 같은 면에서 요즘 말하는 여성의 이성친구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성향이라서 평소에 '여자하고 담배는 안떨어진다' 고 장담했다. 30 초반에 ㅊ이 결혼할 때 나는 잠수 시기였지만 신혼여행이 마땅치 않다길래 내 콘도를 빌려준 덕에 부인과도 관계가 아주 좋았다. 내가 정상 사회로 복귀한 30대 후반 어느날 ㅊ와 1:1 로 술 마시는 자리에서 그가 진지하게 말을 꺼낸다.1톤 노가다 시절. 1994년 7월 종암동 ㅊ : 이쁘고 참한 여자가 하나 있어. 엄마랑 이성친구 식당 하는데 한 번 만나볼래?청청수 : 그래? 잘됐네. 요즘 껀수도 없는데 한 번 보자. 내용도 모르고 나가던 주변의 중신이 슬슬 귀찮아질 때였고 ㅊ가 예쁘다면 신뢰할 수준이라고 생각했다.ㅊ :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는데 . . . 나랑 하룻밤 잤어. 딱 한 번뿐이야.청청수 : 캐시캬. 마누라 구인 여행. 2004년 12월 하얼삔 공항그때 ㅊ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이성친구 놀라웠는데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농담이 아니었다. 그러던 ㅊ은 50대에 혼자 집을 떠나서 부화방탕하게 살다가 코로나가 강습한 시기 어느 새벽에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나는 허리 수술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직후였는데 빈소를 찾으니 조문객은 같이 어울리던 교* 뿐이었다. 그 많던 친구들은 코로나를 꺼렸고 상주나 장례식장이나 조문을 삼가해달라던 때라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귀로가 참 초라했다. 코로나를 피해 ㅊ의 빈소를 찾아서. 2020. 3. 이성친구 3. 새말.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고 내일도 대체 휴일이 계속된다.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낸 못된 친구들은 곁을 떠났고 남은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초상이 나도 가보기 어렵다. 은퇴 5년 차에 이젠 강원도의 강점을 내세우며 “놀러 오라” 하는 말도 이기적으로 보여서 쉽사리 꺼내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잘살지만 어쩌다보니 5월은 노알콜 데이가 간밤 하루뿐이라 오늘도 이어봐야겠다. 나물축제 헛탕으로 기분 씁쓸. 2025. 5. 이성친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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